30대 디자이너가 10대 전용 카드를 만든다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생애 첫 카드’
토스에는 어린이, 청소년 전용 카드가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출시된 지 1년 반도 지나지 않아 벌써 130만 장 넘게 발급되었어요. 토스 유스카드 (USS)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이 카드는 토스의 유저 중 틴즈 타겟, 즉 만 7세부터 만 16세까지만 이용이 가능한 충전식 선불카드인데요.
10대는 엄마 카드나 아빠 카드가 아닌,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생애 최초의 카드 발급 경험이 대다수예요. 카드를 발급하고 사용하는 경험이 훨씬 특별하고 새롭게 다가올 유저인 거죠.
이런 모습을 상상하며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과정들과, ‘30대 직장인인 내가 10대 친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한 부분들에 대해 공유드릴게요.
유저의 취향을 디깅해보자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해당 연령층을 타겟으로 한 인기 많은 브랜드와 이벤트, 웹소설, 10대를 다룬 인터뷰와 다큐멘터리 필름, 트위터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주고받는 이들의 용돈 및 경제 관련 대화들을 한참 디깅(digging)했어요.
이 과정에서 찾은 인사이트는 그들은 충분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다는 느낌이었어요. 흔히 말하는 틴즈 타겟 마케팅이나 상품에서 귀여움을 어필하는 포인트는 어쩌면 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일컫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정작 이 카드를 사용하는 유저들은 본인들은 스스로 작고, 어리다고 말하고 싶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추측 즉, ‘공급자의 시각으로 잠정 고객이 왠지 좋아할 것 같은 카드가 아니라, 진짜 이 카드를 사용할 유저들이 좋아할만한 디자인을 해야한다.’의 관점을 최대한 담기로 했어요. 카드 디자인을 하면서 기존에 출시된 성인들을 위한 토스 카드와도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정말 내가 생각했던 가설이 맞을까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로 열심히 기획을 해보고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어린이& 10대 청소년들이 원했던 게, 사실은 귀여움이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가설이 모두 무너지는 것이 잖아요. 만약 이점이 부정된다면 모든 것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제 안에 두 자아가 대립하더라고요.
😈 : 컨셉 관련해서는 정량적으로 알기도 어렵고 자신 있으니 그냥 진행하자! 이런 악마의 속삭임이 있었고, 👼🏻 : 아니야. 그래도 그 가정 자체가 아닐 수도 있잖아! 더 늦어지기 전에 확인해 보자! 라고 말해주는 천사의 목소리도 있었어요.
컨셉에 대한 가정을 이미 세우고 확신을 얻는 과정이 제게는 낯설고 어쩌면 힘든 과정이었어요. 제가 세운 것들에 대한 부정을 받았을 때 디자이너로서 신뢰를 잃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어요. 하지만 팀원들과 이야기를 해보며 자신감을 얻고 천사의 안내를 따라갔습니다.
유저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인터뷰 때 나왔던 공통된 보이스는 ‘나의 주체적인 소비와 용돈관리를 하고 싶다’와, 이 맥락과 이어지는 부분으로 ‘형 누나들처럼 어른스러운 카드를 갖고 싶다’는 점이었죠.
10대 친구들은 돈을 쓸 때 카드를 내미는 행위가 10대에게는 어른스러운 행위라는 것을 캐치했어요. 용돈을 계좌나 카드로 관리하는 행위에도 ‘부모님이 아닌 내가 직접 용돈을 관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고요.
다행히 제가 생각한 방향성이 맞았고, 귀여운 느낌의 브랜딩보다는 심플하고 세련된 느낌의 디자인이 맞겠다는 걸 좀 더 확신해서 진행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름도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의 젊고 어림’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유스카드 (USS)’로 잡았어요.
서베이를 해보자, 잔인할지언정!
디자인 디벨롭 및 최종안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마지막 큰 고민에 봉착했어요.
10대 유저들에게 한 해 한 해는 엄청난 차이잖아요. 1년만 지나도 금세 취향이 바뀌어버리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이 있을지 고민되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고민처럼 대중을 타겟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뾰족한 성향을 가진 페르소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나이라는 공통분모로만 묶이는 유스 유저들의 성향이 모두 담을 수 있는 디자인이 과연 존재할까 싶었어요. 각자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취향이 굉장히 뚜렷하여 ‘좋아하는 디자인의 포인트’가 너무 다르고 주관적인 거죠.
그때, UX 리서처 승희님이 디자인 초기 시안들도 객관식처럼 가볍게 선호도 서베이를 하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망설여지더라구요. 내부도 아니고 유저들에게 직접 투표를 받아보다니? 디자이너인 제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사실 들었어요. 하지만 이번 케이스에서는 유저와의 거리가 너무 멀기에 거리감을 좁히는 ‘솔직한 수단’이 필요하기에 기꺼이 진행을 해보았습니다.
‘싫어할 거야, 좋아할거야’라는 가정이나 상상이 아닌, ‘이걸 좋아하네?’ 또는 ‘이걸 싫어하네?’라는 솔직한 팩트가 필요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팀원 중에는 그 누구도 10대가 없으니까요!
세 가지 소결론들을 내리고 이에 맞춰 최종안들을 결정했어요. 결론적으로 유저 보이스를 듣고 반영한 것은 너무나 잘한 선택이었어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얻은 부분도 있었고, 수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최종 디벨롭 된 부분도 있었죠. 덕분에 토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를지언정, 제 보이스에 대한 확신이 생겼었죠.
마지막 작업들을 거치며, 5개의 각기 다른 유스카드 디자인들이 세상으로 나왔어요. 각각의 다른 페르소나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 결과물이에요.
나이라는 거리감이 있는 유저들을 상상하는 방법이 저에게도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 중 가장 임팩트 있으면서도 고민이 많았던 점은 ‘10대들에게 투표를 받아보기’로 결정한 액션이었어요. 저도 서베이를 하며 잠재 고객의 보이스를 듣는 것이 제 안의 틀을 깨는 용기이자 큰 시도였어요. 외면하고 싶은 순간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맞이했을 때 새로운 확신과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나 싶어요. 과거의 솔직한 고민들이 여러분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용기로 닿기를 바라며, 이만 아티클 마무리 할게요!
Q. 디자인에 대한 검증에 대한 지표는 어떻게 잡으셨나요?
서베이를 통해 위에 보여드린 시안보다 다양한 시안들의 투표를 진행했어요. A를 선택할 때 A1, A2, A3를 보여주고, A3를 고르면 그중에서 A3-1, A3-2를 보여주는 방식으로요. 이런 식으로 유저의 취향을 좁혀 나갔어요. 선호도 로직에 대해서는 당시 Product Designer 소연님과 리서처 승희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마지막에 주관식으로 ‘어떤 카드가 어떤 이유로 좋았냐’는 물음을 넣었는데, 이 문답이 굉장히 유효했어요. 10대 친구들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한 취향(예를 들어, 나는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팀처럼 보이는 지구본 디자인이 좋다, BTS를 좋아하니 보라색 카드가 좋다 등)의 대답은 조금 후순위로 미루고, 물성, 컬러, 그래픽에 대하여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보이스를 내는 친구들의 공통적인 감도를 캐치하려 노력하였어요.
Q. 만약 유저의 보이스가 예상했던 부분과 매우 다르게 나왔다면 디벨롭 방향성 설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나요?
네, 그랬을 것 같아요. 귀여운 카드에 대한 니즈가 많았다면 지속가능한 토스만의 귀여운 어셋을 고민했을 것 같아요. 후반부의 투표 서베이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는 조금 다르긴 했어요. 예상한 수치보다 모노톤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더 많았고, 컬러가 들어간다면 반투명하거나 홀로그램 등 물성 자체에 대한 새로움까지 곁들여지는 것을 선호한다는 러닝이 있었어요. 실제로 예상과는 다른 대답들이 최종안 결정 과정에 굉장히 유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