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당연하지만 사용자는 아닌 것들
제품을 디자인하다 보면 사용자의 관점이 아니라 메이커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가 있어요.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사용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품을 오래 만들다 보면 너무 당연해 보여서 사용자의 관점을 놓치게 되기도 하죠.
사용자 관점에서 본다는 게 엄청난 게 아닌데도, 왠지 엄청난 것으로 개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죠. 그래서 오늘은 사용자 관점을 활용해 개선한 굉장히 가벼운 사례들을 가져와봤어요.
사용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UI 개선하기
토스에는 ‘내 소비’라는 제품이 있는데요, 내가 토스에 연결한 계좌와 카드의 수입, 지출, 이체 내역을 한곳에 모아서 보여주는 기능이에요.
현재 내 소비 디자인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제가 초기 ‘내 소비’를 디자인했을 때 고민했던 점을 소개해 드릴게요.
초기의 ‘내 소비’에서는 수입, 지출, 이체 내역이 만들어진 시간 순서대로 쌓이게 되는 리스트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 사용성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최근의 소비 내역을 건별로 하나하나 확인하기에는 좋았지만 오늘, 어제, 특정일 언젠가의 소비 합계는 얼마인지, 돈이 언제 얼마나 들어왔고 나갔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달력과 같은 형태로 월 단위로 소비 내역을 한눈에 보고 싶다는 사용자의 보이스를 여러 차례 받게 되면서 소비내역에 달력을 넣기로 했어요.
달력을 넣기 전/후 디자인
달력을 여는 인터렉션 프로토타입
위의 프로토타입과 같이 서랍을 열듯이 화면을 터치한 후 아래로 끌어내리면 달력이 펼쳐지는 방식이예요.
프로토타입으로 사내 동료분들 대상으로 사용성 테스트를 해보니 대체로 어려움 없이 달력을 발견하고 여닫는 방법을 쉽게 이해한다고 보여졌어요. 사용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실제 사용자들에게 내보내 이용 추이를 살펴보고 달력의 유용성을 검증해 보기로 했어요.
다수의 사용자 요청이 있었고 그에 응하는 기능 개발이었기 때문에 내 소비를 이용 중인 사용자라면 반갑게 달력을 이용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달리 달력을 열어보는 사용자들의 수가 너무 적었어요.
이후 실제 사용자의 사용성 인터뷰를 통해 달력을 여닫는 UI 동작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사례를 발견했고 달력이 이미 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달력이 필요하니 만들어 달라는 보이스가 여전히 들어오기도 했죠.
일반 사용자들은 상대적으로 메이커만큼의 높은 UI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어요.
작은 공수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달력을 여닫는 모션을 보여주는 튜토리얼을 넣기도 하고 최초 1회 달력이 열린 상태로 화면을 마주하도록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달력을 열어보는 사용자의 수가 여전히 적어서 우리 팀은 보다 과감한 변화를 주기로 했어요.
사용자에게 익숙한 ‘탭’형태의 UI로 개선한 디자인
위 이미지가 개선된 화면이에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사용해 보았을 익숙한 ‘탭’형태의 UI를 활용했어요.
그 결과 개선 이후 달력을 열어보는 사용자가 네 배 정도 늘어났어요.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데 비용이 들지 않는 익숙하고 단순한 UI 활용으로 진입점에 대한 인지도가 월등히 높아졌기 때문이에요.
자주 봐서 익숙하고 특별하지 않지만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UI가 사용자 관점에서는 가장 쉬운 UI였던 거예요.
제품을 만드는 나에게 익숙한 UI가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UI는 아니라는 것, 사용자 관점에서도 익숙한 UI가 이긴다는 것을 큰 비용을 들여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어요.
사용자가 오해할 만한 기능 개선하기
하나의 사례를 더 소개 드릴게요.
이체 내역의 메모 남기기
내 소비 내역 또는 이체 내역을 상세하게 볼 수 있는 화면이에요.이 화면에는 내역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남길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당시 이 기능을 쓰던 사용자 분들이 ‘메모가 자꾸만 사라진다‘라는 의견을 남겨주셨어요. 개발자 분은 ‘혹시 메모에 특수문자가 들어가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혼잣말이 아닌 대화를 시도하는 느낌으로 남겨진 메모를 발견했어요.
이를 계기로 물음표로 끝나는 메모들을 골라내니 꽤 여러 건의 질문과 대화를 시도하는 메모들이 발견되었는데 대략 100건 중 5~10건 정도라고 파악되었어요.
- 해당 건은 버그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내용 확인이 필요했던 케이스예요. 당시 소비 메모 기능을 쓰던 사용자분들이 ‘메모가 자꾸만 사라진다’라는 의견을 남겨 주셨어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던 과정에서 일부 사용자가 메모 기능을 채팅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 채팅으로 추정되는 메모는 누구의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식별자는 전부 암호화되어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 또한, 메모에 접근 가능한 개발자는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요.
개인적인 메모를 남기는 사람이 가장 많았지만, 어떤 사용자들은 메모 남기기를 고객센터에 보내는 메모라고 이해해서 CS 문의를 남기기도 했고, 어떤 사용자들은 이체 대상자에게 메세지를 보낼 수 있는 기능이라고 이해하기도 했어요.
개인의 카드/계좌를 연결하고 불러온 내 소비 내역이기 때문에 메모 역시 개인적인 기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용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어요.
비교적 적은 사용자가 겪는 문제였지만 우리팀은 작은 개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어요.
개선된 메모 UI
메모를 입력하는 화면 하단에 ‘나만 볼 수 있는 메모’ 라는 텍스트를 넣어주는 방법으로요.
‘이건 사용자 관점이 아니다’ 라는
문제 의식을 캐치하는 팁을 공유하자면
내가 만든 디자인으로 팀을 설득하는 과정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사용하게 된다면 사용자 관점을 잠시 내려두고 있는 상태일 수 있음을 의심해 보세요.
① “이건 당연히 알 수 있는 거 아닌가?”당연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왜 모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이유는 나는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위의 두 사례로 배웠어요.사용자는 연령에 따라, 디바이스나 서비스 이해 정도에 따라, 경험의 유무에 따라, 또 디자인의 전달력에 따라 이해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공급자의 의도를 당연하게 알아줄 수 없어요.
② “어려울 수도 있긴 한데 일단은~”→ 내 안의 공급자적 자아가 사실은 쉽게 풀어내지 못한 디자인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이 정도에서 타협하고 싶을 때 나오게되는 말이에요.
③ “원래 어려운 개념이라~”→ 원래 이런거다 라는 식으로 이해를 구하고 있는 스스로를 인지했다면 거기에서 멈추어야해요. 원래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드는 것이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책임이니까요.고백하자면 저 역시 자주 꺼내게 되는 말이에요. 원래 쉬운 것을 역시나 쉽게 풀어내는 일만 잘해내는 디자이너가 될 순 없지! 라고 여러 순간 되새기고 있답니다.
④ “이건 빠르게 잠깐 내보낼 실험이라서 괜찮아”→ 적은 모수의 사용자에게 빠르게 실험해보는 거니까~ 라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어요. 우리는 실험용 화면과 영원히 보존할 용도의 화면을 구분해서 디자인하지 않고, 토스앱 안에서는 다양한 제품의 여러 실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요. “실험이라서 이정도의 어려움, 이정도의 조금 덜 정돈된 전달력이어도 괜찮아” 라는 생각이 허용되면 디자이너에게는 잠깐일 수 있지만 사용자는 그 잠깐의 경험이 거듭 쌓이게 되면서 어렵고 어설픈 경험을 연쇄적으로 감당해야 하게 되니까요.
사용자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코어에 힘주기’와 같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저절로 되지않아서 어려워요.
사용자를 가까이에서 더 자주 만나면서 내 제품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정량적으로 드러나는 사용 패턴을 확인하며 사용자가 겪는 어려움을 기민하게 알아가는 것이 사용자 관점으로 사고하는 힘을 키워 나가는 유일하지만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