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리서처가 양말 파는 사장님이 된 이유
토스페이먼츠는 온라인 결제를 담당하는 PG(Payment Gateway)사예요. 토스페이먼츠가 사장님 대신 결제를 처리하고 정산까지 도와주죠. 온라인 쇼핑몰과 카드사를 연결하는 ‘결제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처음 몇 달은 PG 서비스를 중심으로 유저 리서치를 진행했어요. 사장님들이 웹/앱 서비스를 어떻게 만드는지, PG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지, 매출과 정산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을 깊게 파고들었어요. 인터뷰에서 만난 어떤 사장님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요.
“처음 온라인 결제를 준비할 때 필수 신고 절차를 몰랐어요. 홈페이지를 다 만들고 나서야 그 절차를 알아서 시간 낭비를 많이 했죠. 이런 과정을 한눈에 따라갈 수 있는 흐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몰랐던 다른 세계가 있더라고요. 사장님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들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사장님들이 말하지 않는 숨겨진 고충은 없는지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저는 사업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때 단순히 결제 프로세스를 넘어, 사업 운영 전반의 니즈와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B2C 서비스는 리서처가 직접 써보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만 B2B는 그 자체를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잖아요.
사장님들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진짜 사장님이 되어보기로요.
UX리서처, 진짜 사장님이 되다
1단계: 사업자 등록하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어요. 진행해야 할 행정 절차가 참 많더라고요. 사업자 유형, 업종 정의, 사업장 주소, 사업용 전화번호 등을 하나하나 입력해 사업자 등록을 마쳐야 했고, 온라인 판매를 위해선 구매안전서비스 이용 확인증을 발급받고, 통신판매업 신고도 별도로 진행해야 했어요.
예상치 못한 절차들이 계속 나와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벅찬 느낌이 들었어요. 사장님들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비슷한 어려움을 겪겠구나 싶었어요.
2단계: 판매 아이템 정하기
판매할 아이템을 찾기 위해 동대문 새벽시장에도 가봤는데요. 사장님들의 포스에 눌려 말 한마디도 쉽게 못 꺼내겠더라고요. ‘깔(컬러)’, ‘장끼(영수증)’, ‘미송(품절 시 선결제 후 예약)’ 같은 거래 용어를 하나도 모르니까요.
몇 번 시장을 오가다 보니, 말투나 준비물도 점점 현장에 맞춰졌어요. 처음엔 회사원 복장으로 갔다가, 나중엔 현금 가방과 사입 가방까지 챙기는 사장님 모드가 됐죠. 그렇게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아이템을 정했어요.
양말.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단가가 낮고 판매가 쉬울 거라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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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새벽시장의 풍경
3단계: 쇼핑몰 구축하기
양말을 팔아야겠다고 결정하면서 쇼핑몰도 함께 준비했어요. 비용을 아끼려고 직접 촬영 공간을 만들고, 지인을 모델로 섭외해 촬영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더라고요. 조명 세팅, 구도 잡기, 보정 작업… 모든 게 처음이어서 예상보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갔죠. 초기 예산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고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상세페이지 구성, 상품 등록, 가격 설정 등을 하나씩 해나갔고, 약 한 달 만에 쇼핑몰을 오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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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촬영 과정
드디어, 첫 주문이 들어오다
첫 주문이 들어왔을 때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해요. 상품을 포장해 택배로 보내고, 정산 금액을 직접 받고 나니 “아, 내가 진짜로 양말을 팔았구나” 하는 실감이 났죠.
하지만 막상 판매를 해보니, 양말은 단가가 낮은 만큼 정말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남는 구조였어요. 이 아이템을 잘 선택한 게 맞을까 고민되고 혼란스럽더라고요.
여러 채널에서 판매한 정산 금액을 확인하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과정도 번거로웠어요. 리서치 과정에서 사장님들이 “여러 판매처의 정산 내역을 일일이 확인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고 자주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직접 경험해보니,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겠더라고요.

오픈한 실제 쇼핑몰
물건 판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쇼핑몰을 준비할 땐 “일단 오픈하는 게 목표다”라는 마음으로 달렸는데, 막상 오픈하고 나니 너무 당연하게도 그게 끝이 아니라 진짜 시작이더라고요. 이제는 어떻게 하면 상품을 잘 팔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했죠.
우선 상품이 팔리려면 ‘노출’이 돼야 했고, 광고와 홍보가 필수였거든요. 그래서 유튜브, 블로그, 사장님들 커뮤니티 등을 참고해가며 키워드별·상품별·타겟별로 광고를 직접 집행하고, 성과를 분석하면서 전략도 조금씩 조정해 나갔어요.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검색해보면 오래됐거나 부정확한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흐름만 짚는 자료가 많았거든요. 같은 키워드로 여러 번 검색하고, 여러 자료를 비교해가며 겨우 내용을 파악했죠.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부딪혀보면서, 사업을 운영하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단계와 결정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사업자 등록, 상품 소싱, 쇼핑몰 제작, 마케팅, 정산 관리까지 — 어느 하나 단순하거나 중요도가 낮은 과정은 없었고, 한 단계라도 꼬이면 그 여파가 다음 단계에 고스란히 이어졌어요.
맨 땅에 헤딩으로 이뤄낸 결과물
직접 사업을 준비하면서 단순한 인터뷰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사장님들의 ‘진짜 고충’을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업자의 여정을 단계별로 분석하면서 제품이나 콘텐츠를 기획할 때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 더욱 명확해졌고요. 다음 리서치를 더 깊고 실제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되어주기도 했죠.
무엇보다 온라인 사업을 시작할 때 PG 서비스 연결 뿐만 아니라, 사업자 등록, 통신판매업 신고 등 필수 절차들이 훨씬 더 간편해져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어요. 실제로 이후 리서치에서도, 사장님들이 여러 사이트를 오가며 각각의 신고 절차를 따로 진행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스페이먼츠에서는 사업자 등록과 통신판매업 신고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새롭게 개발했고, 사장님들이 더 쉽고 빠르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었어요.
또한, 사업자 등록 전·후로 알아야 할 정보 — 예를 들어 세금 신고, 택배 계약, 가격 설정, 절세 전략 등 사업 운영에 꼭 필요한 지식들을 담은 콘텐츠 100여 개도 함께 제작했어요. 이 콘텐츠들이 사장님들의 막막함을 덜어주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출발점이 되길 바라면서요.
해당 리서치 과정에서 발행된 콘텐츠 (일부)
사업자 등록과 신고
사입과 가격 책정
마케팅
B2B 리서처들에게 하고 싶은 말
리서처는 도메인 지식이 필요한 리서치를 맡게 되는 일이 많죠. 이럴 때 작게라도 빠르게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초기 이해도가 눈에 띄게 높아질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높아진 이해도는, 리서치가 얼마나 깊이 있는 인사이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좌우하더라고요.
특히 B2B 리서치에서는 인사이트의 깊이나 제안의 실효성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을텐데요. 이럴 땐 작은 단위라도 직접 경험해보는 과정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사용자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리서치 방향을 훨씬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거든요.
물론 이 접근이 모든 프로젝트에 무조건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리서치의 목적, 서비스의 특성, 그리고 리서처가 실제로 사용자와 유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해 선택적으로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죠.
그럼에도 분명한 건, 직접 부딪혀본 경험이 리서치의 깊이를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