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리서치하세요
토스 UX Researcher는 어떤 일을 하나요?
제품을 만드는 모든 팀에서 사용자에 대한 고민이 생기면 고민을 같이 풀어나가는 일을 해요.
예를 들어, “잘 쓸 줄 알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왜 안 쓸까요?” 같은 질문이기도 하고요. “사장님의 불편을 해소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이기도 해요.
제품 팀이 가지고 있는 사용자에 대한 막연한 고민을 초반부터 같이 싱크해나가면서, 고민에 대한 답이 되는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리서치 방향을 제시하고 진행하는 일을 해요.
UX Researcher의 업무 범위는 어떻게 정하게 됐나요?
혼자서 다 하기보다는 팀원들을 자연스럽게 참여시켰어요.
초반엔 제가 유일한 리서처로 입사했으니 ‘리서치의 A-Z까지 다 끝낸 뒤에 결과만 공유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혼자 인터뷰를 진행하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지나가면서 진행되고 있는 리서치는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진행 상황도 궁금하겠구나 싶어 일단 슬랙 채널을 만들어서 진행 중인 인터뷰의 내용을 요약해서 올려보았죠. 그랬더니 웬걸, 스레드에서 많은 질문과 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이 유저분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부분을 오해하신 거라면 우리가 고쳐봐야겠네요” “이렇게 토스에 신뢰가 아직 없는 분은 어떻게 모셔 올 수 있을까요?”
이렇게 스레드에 달리는 대화가 곧 팀원들의 피드백이자 인풋이었던 것 같아요. 또, 인터뷰 하다가 나온 앱의 개선점을 따로 정리해서 전달하지 않아도 채널에 캐주얼하게 올리면 즉각적으로 대응해 주시는 것을 보고 감동하기도 했었어요.
사실 토스에 입사하기 전에는 이렇게 유저 한분한분의 상세한 내용을 공유한 적은 없었어요. 주로 여러 유저 인터뷰가 끝난 후 분석하고 정리해서 결과만 공유했었죠. 그러다가 토스에서 다들 유저 리서치에 관심이 많아서 디테일한 내용을 채널에 공유하고 의견 교류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유저 리서치는 리서처만의 업무라는 성역 같은 인식보다는 유저 리서치에 당연하게 참여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저에게도 큰 소득이었던 게, 초반에 이렇게 스레드에서 활발히 의견 교류하는 문화를 통해 팀원들이 유저에 대해 갖고 있는 컨센선스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어요. 이 이후로 모든 UT나 인터뷰에 그 제품 메이커는 거의 당연히 참여하고, 의견을 주고받고, 같이 방향을 설정하며 협업하고 있어요.
토스팀에 입사하자마자 무작정 승건님을 포함한 여러 동료분을 인터뷰했어요.
에이전시에서 일했을 때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하면 그 프로젝트에서 기대하는 바를 듣는 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를 이해관계자 인터뷰(Stakeholder Interview)라고 해요. 이걸 하고 안 하고에 따라 프로젝트 이해도의 차이가 크게 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리서처를 채용한 기대치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시 제가 속했던 디자인 플랫폼팀, 사일로 팀원분들, 승건님을 가장 먼저 인터뷰했어요. 이분들이 리서처의 업무 범위를 알려줄 순 없었지만, 적어도 현재 토스팀에서 궁금해하는 것들, 유저에 대해 모른다고 느끼는 영역들, 사일로에서 가지고 있는 고민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이런 고민에 대해 부딪혀 보면서 업무 범위를 파악해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승건님 인터뷰를 통해서는 당시 토스팀에서 ‘3040’ 사용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사용자분들을 무작정 만나본 적이 있어요. 당시 토스를 사용하는 가장 많은 연령층이 20대였는데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가입자 비율이 낮아지는 현상을 보였죠. 그래서 몇몇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고 주요한 유저들의 목소리를 팀에 공유했는데, 한 사용자분의 사례에서 팀원들의 충격이 엄청났어요.
그분은 아예 토스에서 송금이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이제 막 토스에 입사한 저에게는 그렇게까지 충격은 아니었는데, 간편송금을 시작으로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 나가던 토스 팀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죠. 전혀 몰랐던 사용자의 시각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저는 토스팀은 정량적인 분석을 많이 하는 조직이라서 정량적으로 의미 있는 숫자에만 반응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한두 사용자의 의견이더라도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 후부터 리서처에게 자연히 “제공자 관점에서 놓치고 있는 유저의 시각과 페인포인트를 전파하는”역할을 기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첫 3개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데, 말을 아껴야 했어요.
리서처는 사실 할 말이 되게 많은 직군이에요. 유저에 대한 맥락부터 디테일, 그 안에서 중요한 사항이 뭔지, 왜 이걸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 등등 결론에 이르기까지 전달해야 할 정보가 되게 많아요. 그래서 저는 보고자료 만드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토스팀은 보고도 없고 메일도 없고 슬랙으로 빠르게 티키타카 하며 커뮤니케이션하는 팀인 거예요. 유저 리서치를 마치고 결론을 정리하려는데, 이전에 하던 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전부 썼다간 스크롤 압박이 될 게 뻔했어요.
특히 위에서 소개한 3040 유저 인터뷰 내용을 공유할 때인데요. 이때도 이전에 하던 대로 20장이 넘는 장표를 일단 작성했어요. 그리고 뭔가 허전한 것 같아서 장표 초반에 이목을 끌고자 유저분이 말씀하신 영상의 일부분을 편집해서(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컨셉) 팀원들 앞에서 틀고 그 이후부터 장표 발표를 시작했는데요. 모두 영상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때는 혹시 너무 자극적인 voc에 집중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했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내용이 잘 전달될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더라고요. 인사이트를 잘 도출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사이트를 잘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도 리서처의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첫 3개월 동안 했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아무도 안 볼 리서치 가이드라인을 열심히 만들었어요.
토스도 UX 리서처가 처음이었지만 저도 UX 리서처는 처음이어서, 일반적으로 인하우스의 리서처가 어디까지 업무하는지 사실 잘 몰랐어요.
그 당시 JD에 “토스팀에 리서치를 교육하고 전파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그 기억으로 일단 입사하자마자 리서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리서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고 마구 노션에 써 내려갔어요.
기존의 에이전시에서 리서치를 해봤던 경험이 있으니, 가이드라인에 필요한 건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고 뭐라도 빨리 뽑아서 성과를 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나 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쓸데없던 일이었던 게, 리서치를 하겠다고 저한테 문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가이드라인을 열심히 작성한 거예요.
사실 UX 리서치가 당시 꽤 생소한 분야고, UX 리서처를 채용했다는 사실을 다 알지조차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생소한 분야를 가이드라인으로 내가 알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토스팀에서 조금만 지내보고 나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죠. 문서 먼저 읽어보라고 하면 아무도 안 읽을 것이라는 걸요.
유저를 알고 싶어 하는 사일로를 찾아가서 같이 유저를 만나보고, 리서치를 통해 뭘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체감하게 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한두 팀과 리서치를 하고 결과를 팀에 공유하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저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렇게 작성하던 가이드라인은 지금까지도 몇 년간 꺼내볼 일이 없었답니다…
그래도 초반에 문서화 한 것들이 전부 쓸모없진 않았던 게, 아직도 팀원분들이 많이 들어와 보는 노션이 이거에요. UT는 5명이면 충분하다는 노션이요. 매번 팀원들이 “UT 몇 명 정도 해보는 게 적당해요?” “한 20명 해봐야 정확하지 않을까요?”라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요.
이 짧은 노션 하나로 이후 아무도 묻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요. 5명인지 10명인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은 유저로도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Iteration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된 것 같아요.
처음 입사한 당시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리서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리서치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들이 나의 유저라고 생각하고, 이들의 맥락과 이들의 수용도를 전부 파헤쳐 보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 리서처를 찾게 되었는지, 제품에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뭔지,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유저는 누구인지… 심지어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인사이트를 전달해야 가장 수용이 잘 되는지도 고민해 봐야 해요.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팀에 처음 적응하는 과정에서 하기가 쉽지 않아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해야 하거든요. 인터뷰로 세팅된 자리에서 사용자분께 질문하는 건 쉽지만, 제가 인사이트를 가져와야 하는 입장에서는 질문이 생겨도 선뜻 나서기 어려워요.
특히 처음 입사해서 팀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축약어를 모를 땐 기본적인 내용도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 이해 못 했는데 이해한 척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자리로 와서 검색해 보기도 했죠. AMPU가 뭐지..? 하면서요. 하지만 이해한 척 할수록 점점 더 놓치는 게 많아질 뿐이더라고요.
사용자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두려움 없이 질문하고, 질문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요. 그리고 질문이 많아질수록 더 풍부한 리서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해야 해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가면서 더 그 팀에 맞는 리서치를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