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3명인 제품, 만들어야 할까?
툴즈 프로덕트 디자이너?
토스에는 Tools Product Designer라는 직군이 있어요. 토스 팀원들이 빠른 속도로 혁신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일을 해요. 내부 제품을 만드는 팀도 일하는 방식은 다른 팀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어떤 제품 혹은 인프라를 만들었을 때 임팩트가 클지, 어떤 일이 더 중요한지 팀원들간에 치열한 논의를 통해 방향을 정해요.
제가 처음 합류한 팀은, 새로 생긴 인터널 팀이었어요. 당시 토스증권은 설립된지 얼마 안되어서, 토스코어에 비해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았는데요. 그런 환경에서 팀원들의 업무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었어요. 상담원 분들이 쓰는 고객 상담 툴부터 서비스 개발에 필요한 어드민 제품까지,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태였죠. 그때 PO가 팀에 콘텐츠 에디터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인터널 팀에서 꼭 풀어야 하는 문제일까?
입사한지 얼마 안된 제가 봐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콘텐츠 매니저는 3명이었고, 콘텐츠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발행되고 있었어요.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멀쩡히 동작하는 에디터가 있으니 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라는 것에 공감할 수 없었어요.
- 나: 왜요? 불편하긴 하지만 돌아가는 에디터가 있긴 하잖아요. 쓰는 사람이 세 명밖에 없는데 더 임팩트 있는 일 해야죠!
- PO: 일단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보고 얘기하시죠.
강하게 반대하니 PO가 콘텐츠 발행 프로세스 한번만 참관하자고 저를 설득했고, 콘텐츠 매니저 온보딩 세션을 듣게되었어요.
*토스 앱에는 ‘오늘의 머니팁’, 토스 증권 ‘투자는 이렇게’ 같이 어려운 금융 개념이나 뉴스를 쉽고 빠르게 알려주는 서비스가 곳곳에 있어요. 콘텐츠 매니저는 이런 글을 기획하고 만드는 에디터 역할을 해요.
문제의 크기를 재보자
콘텐츠 매니저의 온보딩을 들으면서, 기존 콘텐츠 발행 프로세스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직접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의 글을 발행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툴만 열 개 가까이 되었고, 그마저도 멀쩡히 동작하지 않아 코딩하듯 글을 써야했어요.
Before – 코딩하듯 글을 써야했던 이전 에디터 화면
실제로 글을 쓰려면 알아야 하는 html문법이 ppt로 수십장에 달했어요. 다 외우기 어려우니 매번 문서를 찾아보아야 했고, 이 작업만 전담하는 어시스턴트가 따로 있었어요.
3시간여의 온보딩을 듣고 나니 이렇게까지 글을 만들어내는 콘텐츠 매니저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고, 이 발행 과정을 꼭 개선하고 싶다는 공감대가 생겼어요.
최소한의 리소스로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보자
결국, 콘텐츠 에디터를 개선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3명만 쓰는 제품에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기는 어려웠죠. 그래서 제품을 새롭게 만드는 선택지는 배제하고, 두 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1) 최소한의 리소스를 써서, 2)최대한의 효율을 낸다. 이런 전제 하에 나온 방향은 두 가지가 있었어요.
1)기존 에디터 개선
: 기존 에디터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5가지만 해결하자.
2)오픈소스를 활용한 새로운 에디터 개발
: 오픈소스를 활용해서 새로운 에디터를 만들자.
하지만 두 가지 솔루션 모두 단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1)기존 에디터 개선
: 너무 오랜 기간 여러 개발자의 손을 거쳐 히스토리를 알 수 없고, 부분만 고치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아무리 개선 범위를 좁힌다고 해도 투자하는 시간 대비 효율이 낮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어요.
2)오픈소스를 활용한 새로운 에디터 개발
: 사실 기존에 쓰던 에디터가 이 목표로, 오픈소스를 활용해 만든 툴이었어요. 애매하게 커스터마이징한 에디터를 만들었다간 언젠가 지금과 비슷하게 손 쓰기 어려운 상태가 될 위험이 있었어요.
둘 중 하나가 아닌 완전히 다른 해결책
최소한의 리소스를 쓰면서 효율을 만들려면 어느정도의 단점을 감수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포기하지 않고 팀원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기존 후보들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으로 노션을 생각해냈어요.
노션의 장점은 이런 것들이었어요.
- 텍스트 에디터를 우리가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되고:노션이 화려하고 정교한 글 서식을 지원하지는 않지만, 토스 콘텐츠에서 주로 쓰는 서식은 모두 갖추고 있었어요.앞으로 토스 콘텐츠가 화려하고 새로운 서식 스타일로 차별화할 거였다면 몰라도, 지금의 콘텐츠 제작 방식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며 믿을 수 있는 외부 솔루션:오픈소스는 지원 여부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명확해요. 지원 여부에 따라 미래에 fade out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해요.노션의 api를 같은 기준으로 볼 수도 있는데, 적어도 지금 크게 성장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망하지 않을 것(가까운 미래까지 활발하게 업데이트 및 기능 확장할 것)으로 예상했어요.
노션으로 콘텐츠 시스템 만들기
토스에는 TDS라는 이미 훌륭한 UI 디자인 시스템이 있어요. 이 시스템과 노션의 텍스트 블록을 1:1로 매칭해주기만 하면, 노션에서 글 쓰는 것과 서비스에 글이 올라가는 것의 간극을 아예 없앨 수 있었어요.
콘텐츠 매니저가 노션에 글을 쓰면, 토스 디자인 시스템이 적용된 서비스 화면이 자동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서식 편집을 따로 할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after – 원고 작성 화면과 서식이 자동으로 적용된 서비스상 콘텐츠 화면
원고 작성이 끝나면, 글이 토스앱 안에서 어디에 어떻게 올라갈 것인지 서비스와의 접점만 설정하면 돼요.
after – 이미지, CTA 등 발행 설정 화면
한 달의 시간으로 얻은 확장 가능한 효율
문제를 찾는 과정부터 솔루션을 제품화하기까지, 한 달 동안 바뀐 점은 이렇게나 많았어요.
1. 작업 속도가 빨라졌어요.
10여개에 달하는 툴을 오가며 글을 써야 했던 이전과 달리, 노션에서 글을 쓰고 어드민에서 발행 설정만 하면 되기 때문에 작업 시간이 적게는 1/3, 많게는 1/10까지 줄었어요.
2. 적은 인원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하나를 발행할 때에도 편집 어시스턴트와 여러 차례 커뮤니케이션해야했던 이전과 달리, 콘텐츠 매니저 혼자서 편집, 발행까지 클릭 몇 번으로 할 수 있게 됐어요.
다른 무엇보다 원고를 쓰는 일, 더 좋은 글을 쓰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3. 데이터 접근성이 높아지고 콘텐츠를 더 많은 곳에서 활용하게 됐어요.
채팅 상담에서 어려운 증권 개념을 콘텐츠로 풀어준 사례
이런 효용이 사내에 바이럴로 번지며 콘텐츠 뿐만아니라 텍스트 에디터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게되었는데요, 공문﹒공시를 올리거나, 채용 페이지에 게시물을 올리는 등 예상치 못했던 니즈가 팀에 쏟아져 들어왔어요.
인사, CX 처럼 디자이너, 개발자가 없는 팀들이 유저에게 필요한 글을 게시할 때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거죠. 그래서 지금은 토스 전체 계열사에서, 다양한 플랫폼에 글을 쓸 수 있도록 제품을 확장하고 있어요.
이 정도 리소스로 이만한 임팩트를 낼 수 있다면 사용자 3명인 제품도, 만들어볼만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