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금융 상품 중에 선택받는 제품 만들기
안녕하세요. 토스뱅크에서 예적금 상품의 UX를 담당하고 있는 송예슬입니다. 저는 토스뱅크 통장부터 ‘굴비적금’, ‘자유적금’까지,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관리하는 경험 전반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이 글에서는 그 수많은 저금 상품 중 어떻게 ‘선택받는 저금’을 만들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들려드리려고 해요.
제가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받은 미션은 아주 명확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토스뱅크를 쓰게 하는 것. 저금 상품으로.
저금은 은행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상품이에요. 다른 핀테크 서비스와 달리, 실제로 고객의 돈을 보관하고 이자를 제공하려면 ‘은행’의 법적 요건이 필요하거든요. 게다가 적금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죠. 투자나 대출보다 진입장벽이 낮고,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써본 경험이 있잖아요.
하지만 바로 그 익숙함이 문제였어요. 이미 세상에는 수많은 저금 상품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그 속에서 토스뱅크가 ‘선택받는 저금’을 만들려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어요.
1. 굴비적금의 탄생 - 콘셉트를 입히다
누구나 최고 금리를 받는 적금
시중의 적금 상품을 살펴보니 대부분 소구 방식이 비슷했어요. “연 10% 고금리”라는 문구에 끌려 들어가 보면, ‘월 50만 원 이상 카드 실적’, ‘월급 통장 연결’, ‘자동이체 3건 유지’ 같은 복잡한 조건들이 숨어 있었죠. 이런 구조는 사용자에게 피로감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토스뱅크는 단순히 금리를 높이는 대신, 조건을 완전히 없애보기로 했어요. 복잡한 조건 없이 누구나 저금만 해도 최고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쉬운 적금이었죠. 가치가 확실한 좋은 제품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어요. ‘쉬운 적금’이라는 말만으로는, 이 제품이 얼마나 특별한지 사용자가 체감하기 어려웠던 거예요.
‘굴비적금’이라는 콘셉트를 입히다

그래서 제품에 캐릭터와 스토리를 더하기로 했어요. ‘절약’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며, 절약을 상징하는 ‘굴비’를 모티브로 잡았어요. ‘절약왕 굴비가 당신의 저금을 도와준다’라는 친근한 콘셉트로, 눈에 띄는 적금을 만든 거죠.
처음엔 팀 내부에서도 우려가 컸어요. “조금 촌스럽지 않을까?”, “부정적인 어감 아니야?”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 ‘촌스러움’이 기억에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적당히 예쁜 제품보다는 확실히 기억에 남는 제품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 결과, 2023년 3월 출시 후 단 한 달 만에 30만 개의 계좌가 개설됐어요. 보통 시중은행이 특판 적금을 내놓아도 1~2만 건 정도인데, 그걸 훨씬 뛰어넘은 수치였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사람들이 “나 토스 굴비적금 들었어”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는 것이었어요. ‘토스의 적금’이 아니라 ‘굴비적금’이라는 이름으로요. 즉, 제품이 ‘기억에 남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것이었죠.
2년 뒤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토스뱅크의 수많은 서비스 중 ‘굴비적금’은 여전히 인지도 상위권(7위)에 올랐어요. 사용자들이 제품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건, 콘셉트가 확실히 각인되었다는 증거였죠.

한 번은 “정말 콘셉트가 중요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실험을 해봤어요. 다음 제품인 ‘자유적금’에서는 콘셉트를 제거해 봤죠. 대신 혜택은 훨씬 좋았어요. 최대 금액과 기간을 늘리고, 커뮤니티에서 ‘혜택이 역대급’이라 불릴 정도로 매력적인 상품이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굴비적금의 가입률이 훨씬 높았어요.
콘셉트는 단순한 디자인 장치가 아니라, 사용자가 ‘이 제품이 왜 좋은지’를 즉시 이해하게 돕는 장치라는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죠.
2. 잔돈 찾기 - 사용자가 ‘좋아하는 순간’을 키우다

토스뱅크에는 ‘이자 모으기’라는 기능이 있었어요. 이자를 기존 통장에 합산하지 않고, 별도의 통장에 모아주는 기능이었죠. 모으기만 제공할 뿐 별도 혜택은 없어서, 팀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기능이에요.
그런데 한 번은 어떤 상품을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이자 모으기’ 기능을 잠시 중단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VOC 온도가 매우 뜨거웠죠. “기획자 뭐 하냐, 돌려달라”는 의견이 쏟아졌어요. 혜택도 없는데 왜 이 기능을 이렇게 좋아할까? 궁금증이 생겨 서베이를 돌려봤어요.
이자는 하루 몇 십원 단위의 적은 금액이지만, ‘이자만 따로 모인다’ 라는 시각적 구분이 사용자에게 뿌듯함을 줬던 거예요. 소액이라도 예상치 못한 돈은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비슷한 접근을 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잔돈 찾기’ 서비스였어요. “잊고 있던 내 돈을 찾았어요”라는 메시지로, 안 쓰는 계좌에 남아 있는 잔돈을 찾아 모아주는 기능이었죠. 결과적으로 이 서비스는 비활성 사용자들이 다시 앱을 열게 만드는 데 큰 효과가 있었어요. 한 번 이탈한 사용자를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전의 금전 보상형 이벤트보다 훨씬 높은 재활성화율을 기록했죠.
3. 젤리 찾기 - 시각적 단서로 이탈을 줄이다
이런 접근 방식이 유효하다는 걸 확인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걸으면 포인트가 쌓이는 ‘만보기’처럼, 저축에도 소액이라도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앱테크형 적금’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100원을 저금할 때마다 무조건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를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비용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꽝/당첨’ 구조를 생각했어요. 100원을 저금할 때마다 일정 확률로 보상이 주어지는 형태였죠. 하지만 이런 출석 체크형 구조는 일회성 이벤트에서는 유효할지 몰라도,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로는 금방 지루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꽝이지만 즐거운 꽝’을 만들기로 했어요. 100원을 저금할 때마다 블록을 하나씩 깰 수 있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젤리를 조금씩 찾아가는 구조예요. 젤리가 전부 드러나면 당첨되어 보상을 받지만, 그전까지는 젤리가 점점 드러나는 과정을 보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라는 재미를 느낄 수 있죠.
사실 중간 화면도 따지고 보면 ‘꽝’이에요. 그런데 그냥 꽝 보다 기분이 좋아요. 왜냐하면 돈이 나올 수도 있는 젤리가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죠. 무언가 단서를 발견한 듯한 기대감이 생기고, 이게 곧 ‘꽝조차 즐겁게 만드는 경험’이 되었어요. 결과적으로 기존의 비용 구조(꽝→당첨)는 유지하면서도, 사용자가 즉각적인 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설계를 완성할 수 있었죠.

이런 시각적 피드백이 정말 효과적인지 궁금해서 실험을 해봤어요. 블록을 깨려면 100원 저금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인트로 페이지에서 A는 뒤에 뭐가 있는지 안 보이고, B는 살짝 보이게 했어요.
결과는 명확했어요. B안에서 이탈률이 A안보다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실제 저금을 시작한 비율이 크게 늘었어요. 젤리가 ‘살짝 보이는 것’만으로도 사용자는 “한 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던 거예요. 이 작은 시각적 단서가 사용자의 흥미를 끌었고, 그 결과 출시 한 달 만에 50만 명 가입을 기록할 수 있었어요. 수신 상품 중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사례였죠.
적용해 보기
- 눈에 띄게 만들기
실제 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눈에 띄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때로는 제품의 본질적인 개선보다, ‘우리 제품이 뭐가 다른지’가 한눈에 보이게 하는 일이 먼저일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콘셉트나 메시지를 찾아보세요.
- 새로움보다 ‘단서’ 찾기
혁신은 전혀 없던 걸 만드는 데서 나오지 않아요. 사용자 VOC나 데이터 속에 ‘다음 제품의 단서’가 숨어 있죠. ‘이자 모으기’ 기능처럼, “이 기능 왜 없어졌나요?” 같은 피드백이 새로운 제품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죠.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경험 안에서 사용자가 더 좋아했던 순간을 찾아내는 게 중요해요.
- 성숙한 제품일수록 ‘좋은 감정’에 집중하기
시장이 안정기에 들어서면, 더 이상 큰 불편함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땐 불편함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사용자가 이미 좋아하는 경험을 더 극대화하는 일이 훨씬 효과적이에요. 불편함을 없애는 UX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용자가 계속 머물고 싶게 만드는 경험을 디자인해보세요.
✅ 이번 아티클은 아래 Toss Makers Conference 25의 세션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Word 송예슬
Edit 유아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