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피플: 이것도 ‘나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이번 토스 피플에서는 Product Designer 이지윤 님의 인터뷰를 공유드려요. 지윤님은 여러 도메인의 회사들을 거쳐 토스에 입사하셨고, 토스 안에서도 총 10 개 내외의 팀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셨어요. 토스에서 했던 주요 프로젝트는 함께 토스 켜기, 전체 탭 및 홈 탭 개선 등이 있고, 지금은 새로운 서비스에 유저를 끌어오는 그로스 일을 하고 계세요.

Q. 지윤님은 토스에 오시기 전에 4개의 회사에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요?
아무래도 A회사였죠. 당시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땐데, 펠로우십 공고를 보고 반드시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전공이 산업 디자인이었는데, 제품 디자인은 진짜 장인 정신과 디테일이 중요한 분야더라고요. 저는 디테일에 강한 타입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고, UX/UI는 학점이 괜찮았어서 이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너무 하고 싶어서, 다른 분들이 이 공고를 못 봤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죠.
감사하게도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됐는데,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매주 펠로우십 과제를 하는 일정이었거든요. 재미도 있었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인턴과 정규직 전환 등의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경쟁적이기도 했고요. 마지막엔 완전히 지쳐서, 결국 정규직에 전환되지 못했었어요.

Q. 졸업 전시에 과제, 경쟁까지…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지네요. 토스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인턴 기간이 끝나고, 대기업 준비하는 것보다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라도 빨리 경험을 쌓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실제로 큰 기업들에 합격하기도 했는데, 뭔가 제가 거기에 다닌다는 게 잘 상상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서류 합격했는데 더 진행하지 않았었어요. 이후에 두 곳 정도의 스타트업에 다니다가 퇴사하게 됐는데, 우연히 토스에 다니고 있던 디자이너 분께 연락을 받아서 지원하게 됐었죠.
솔직히 처음에는 ‘내가 감히?’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왜냐면 제 경력이 2년도 채 되지 않을 때였고, 토스가 워낙 유명했었으니까요. 실제로 와보니 굉장히 힘들었던 것도 맞는데, 도파민이 장난 아니긴 했었죠. 바로 옆에 승건 님이 일하고 계시고, 저도 제 제품에 욕심이 많았거든요.

Q. 2년 차 되었을 때는 점수가 엄청 떨어졌네요.
네… 저희끼리는 2년 병이라는 말도 하는데요. 허니문 기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끝나고 나서 점점 떨어졌어요. 당시 토스는 인원이 적기도 하고 직급이 뚜렷하게 나뉘어져있던 때가 아니어서, 영향력이 엄청 중요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주니어라 경험도 부족했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제가 다룰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유저 그로스할 때 엄청 올라갔던 것 같아요. 그때 PO가 승건 님이었거든요. 바로 옆에서 승건 님이 일하시는 걸 보면서 엄청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었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승건님은 전체 회사의 대표임에도 완전히 디테일하고 집요하게 사용자에게 집착한다는 점이었어요. 멀리서 보았을 땐 아무래도 대표라는 자리이니 큰 그림 위주로 보는 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용자의 가치, 사용자가 느끼는 점 등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신경쓰고 해결하려 하시더라고요.

Q. 사실 대표랑 한 팀으로 일한다는 게 좀 겁났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 겁에 대해서는 저 나름의 전략이 있는데. 모든 일은 겁이 나잖아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근데 겁이 나면 일단은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그러니까, 다른 데로 정신을 돌리는 거죠. 그리고 저는 약간 충동적인 성향도 있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때 확 질러버리는 거죠. ‘저 할게요’하고요. 다시 못 돌아가게. 그렇게 하고 나면 제가 저지른 게 있으니까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고요. 일단 벌려놓고 나면 마무리해야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이상하게 하든 말든 어떻게든 하긴 하는 거죠.
사실 이건 제가 첫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이 안되고 생긴 습관 같기도 해요. 그때의 저는 통제를 좋아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고민도 진짜 많이 하는데, 사실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인데 그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는 ‘일단 지르고 보자!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내겠지.’ 이렇게 되더라고요.

Q. 너무 부지런하다… 그때가 몇 년 차 정도 되셨나요?
아마 3년 조금 넘었을 때였을 거예요. 토스 내에서는 디자이너로서도 꽤 오래 일한 셈이 된 거죠. 그러다가 승건 님이 토스 신용 페이의 PM 역할을 제게 부탁하셨어요. 토스에서는 디자이너들이 보통 PM이나 PO역할도 조금씩 나눠서 하니까, 저는 그 정도로 예상하고 알겠다고 했죠.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까 정말 디자인을 거의 할 일이 없는 거예요. 매일 제휴사들이랑 통화하고, 만나서 협상하고 그런 일들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니까 나쁘지 않더라고요. 꽤 재미있었어요.
그 일을 마친 다음에는 네비게이션 팀에서 일하게 됐어요. 첫 업무는 토스의 전체 탭을 개선하는 일이었죠. 당시 전체 탭이 정말 문제가 많았거든요. 각 제품별로는 디자이너가 있는데, 이렇게 공통으로 쓰는 영역은 회색 지대라서 아무도 맡은 사람이 없었어요. 게다가 전체 탭은 모든 제품의 진입점으로 쓰이는 공간이니까, 맡은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이해 관계자인 복잡한 제품이었죠. 그걸 끝내고 나서도 계속 플랫폼적인 일을 했었어요. 예를 들면 사용자들이 제품별로 진입점을 얼마나 잘 찾는지 점수화한 EVR이라든가… 이것도 디자인만큼이나 팀원들을 설득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었어요. 계속 하니까 좀 고되더라고요.

Q. 그래서 점수가 좀 떨어졌었네요. 근데, 홈 팀 업무 하시면서 다시 올라갔어요.
사실 홈이 저한테는 참… 아픈 손가락이에요.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얼마나 힘들었냐면, 엘리베이터를 타면 사람들이 ‘이지윤 왜 저렇게 못 하냐’ 비난할 것 같다고 혼자서 상상하면서 괴로워할 정도로… 좀 우울이 심했던 것 같아요. 근데 네비게이션 일할 때보다는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두렵기도 했던 것이지만) 점수는 더 높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에 홈 일을 시작할 때 ‘해결해야 할 것 10가지’를 정리해놨었거든요? 제가 1번으로 적어놨던 걸 8월에 발의를 했는데, 12월에 해결한 게 몇 개 있었어요. 사실 그 사이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12월에 돌아보니 되어있었던 거죠. 중간에 한 번 좌절됐었을 때, 그냥 ‘이거 안 되겠다’, ‘못하겠어’하고 그만뒀었는데, 그걸 다시 끌고 와서 제가 12월에 결국 해냈다는 게 되게 고무적이었어요. 저 스스로의 집요함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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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은 좀 어떤 상태인가요? 5년 전의 지윤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해요.
지금요? 지금은 너무 좋아요. 사실 불안감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 중 가장 크거든요. 과거에 크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별 거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솔직히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생각이 들어요. ‘이게 맞나?’
그럴 때 저는 약간의 나르시시즘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나니까 버티는 거지.’ 과거에 했던 성공들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다독여보는 거죠. ‘그래도 네가 한 것들이 있는데, 이것도 그렇게 하겠지.’라고 자기 주문을 외는 것 같아요. 실패한 것들 떠올려봤자 좋을 게 없잖아요. ‘나 아니면 누가 하겠어.’ 계속 그렇게 생각해보는 거죠. 과거의 저도 힘들었던 순간에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Interviewee: 이지윤 Interviewer & Editor: 김자유, 유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