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피플: 방황은 내게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번 토스 피플에서는 Design Strategy Lead 김유라님의 인터뷰를 공유드려요. 유라님은 브랜드 디자이너로 입사해, 프로덕트 브랜딩 팀에서 추석 토끼, 눈사람 기부 이벤트, 장애인의 날 점자 카드 이벤트 등 다양한 시즈널 제품을 만들고, 오늘의 운세 제품을 리딩하셨어요. 지금은 시각 장애가 있는 사용자들을 위한 접근성 프로젝트에 몰입하고 계시죠. 프로젝트는 다양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토스에서 ‘정성적 경험’의 가치를 끌어올렸다는 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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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유라님은 토스에 브랜드 디자이너로 입사하셨다고 들었어요. 언제부터 브랜딩에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원래는 광고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첫 회사로 광고 회사에 인턴으로 취업을 했었죠. 기대했던대로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계속 생각하고 스토리를 부여하고 이런 게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만들어진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닌 제품 자체를 만드는 일에 가까워질순 없을까?라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브랜딩이라는 분야를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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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 그럼 그 다음 회사는 브랜드 디자이너로 입사하시게 됐나요?
맞아요. 사실 회사가 교육 출판 쪽이어서 도메인이 제 관심사가 아니긴 했는데, 신입 공채가 진짜 어렵잖아요. 그래서 일단 합격했으니까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갔었죠. 그런데 가보니까 회사가 브랜딩을 크게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디자인 방향성도 공감하기가 어려웠어요. 그곳에 적응하는게 너무 힘들었는데, 신입이라 이직이나 재취업도 힘들 거고, 제게 맞는 일이나 회사에 대한 기준도 없어서 어떻게든 버텼어요. 그런데 무조건 버티기만 하는 게 답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결국 나오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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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당시에는 엄청 고민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실제로 그때 퇴사하고 엄동설한에 바닥에 내팽겨쳐져서 6개월 동안 취업 준비만 했거든요? 참 막막했죠. 아침에 눈 뜨면 카페 가서 포트폴리오 준비하고 카페 문 닫을 때 같이 나오고… 너무 힘들었지만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이어갔던 것 같아요.
그 때 가장 크게 배운게 있어요. 제가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차가운 대문자 T였거든요. 힘들다고 내색도 잘 못했어요. 근데 자꾸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는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너무 힘들 것 같다면서... 그 친구 덕에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실질적인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공감만으로도 많은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애정과 공감이라는걸요. 그리고 대문자 F로 바뀌게 됐죠.
Q. 그 시기의 경험이 지금 하시는 업무와도 연결되는 것 같네요. 어쨌든, 결국 취업에 성공하셨어요.
진짜 너무 좋았어요. 사실 그때 다들 저한테 원하는 곳은 가기 힘들거라고 했거든요. 그 회사가 요구하는 포지션이 경력 3년이상 이기도했고요. 그런데도 합격을 해버린 거예요. 결국 ‘세상에 예외는 있구나’,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 편 새로 입사하게 된 회사가 어떤 면에서 구원자이기도 했지만 또 마냥 좋기만 하진 않았어요. 주도권이 아예 없었거든요. 이런 저런 고민이 많았죠. 그런 찰나에, 저한테 토스라는 회사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어요.
Q. 이직을 고민하던 차에 토스라는 회사가 눈에 들어왔나보군요.
아뇨. 그래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 너무 좋아서 큰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당시 저에게 토스라는 회사가 너무 멋져보였어요. 디자인도 진짜 잘하고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도 너무 선진적인것 같고요. 게다가 그때 채용 사이트가 막 시간이 타이머로 뚝뚝 내려가는 디자인이었는데 마음이 진짜 조급해지더라고요. 밤낮으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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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국 토스에 브랜드 디자이너로 입사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하, 그래프 더 높게 그려야 되는데(웃음). 제일 좋았죠, 정말. 이 애자일이라는 문화와 업무 방식을 접했을 때 그냥 신세계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도 다 너무 똑똑한 것 같고, 나한테 왜 이렇게 많은 권한을 주는지 모르겠고, 저한테 다 알아서 해보라고 하고… 전사 위클리도 ‘어떻게 저런 내용을 다 공유하지’ 싶었고요.
그런 한편 주변에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고 막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 위축이 됐었죠. 그래서 그때 진짜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에 밤도 많이 샜고, 긴장을 많이 해서 힘이 빡 들어가있었다고 할까요. 커뮤니케이션 할 때도 좀 장황하게 설명하고 옷도 막 슬랙스에 구두 신고 다니고요(하하) 지금은 뭐... 후리하게 다니죠.
Q. 그러셨구나. 전혀 몰랐어요. 그 이후엔 좀 괜찮아지셨나요?
어쨌든 열심히 하긴 했는데…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어요. 이 회사의 핵심은 제품인데 내가 너무 제품이랑 멀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계속 표면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커리어 초반부터 했던 고민이 계속 이어진 거죠. 내가 더 소속감을 느끼면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프로덕트 브랜딩이라는 팀이 신설됐어요.
당시 조직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브랜딩도 세부적으로 분리해야 할 시기가 왔었어요. 그때 “저 해볼게요”한 거죠. 당시 희연님이 UX 헤드였는데 약간 당황하셨던 것 같기도 해요(웃음). 너무 다른 플랫폼이긴 했으니까. 그래도 희연님이 원래 좀 열린 분이라, “그래요, 해봐요!” 하셔서 직군을 전환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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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도 기억나요. 유라님이 제품하겠다고 하셔서 완전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와… 그런데, 플랫폼을 바꾼다는 게 진짜 뇌 구조를 바꾸는 기분이더라고요. 내가 지금까지 오프라인에서 전달했던 경험을 모바일로 전한다는게 너무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툴도 익숙하지 않은데다, 아직 조직에서 신뢰를 쌓지 못한 상태인데 또 새로운 걸 해야 하니까 부담도 되고 그랬죠. 제가 너무 불안해하니까, 희연님이 매주 1:1 미팅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었어요. 그때 어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솔루션을 주시진 않았지만, 혼자 생각하고 결정내리도록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너무 헤매지 않고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 있었죠. 마음에 안정감도 생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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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언제 처음으로 신뢰를 쌓게 된 거예요?
추석 토끼요. 추석 때 사용자들에게 따뜻한 내용의 편지를 주는 이벤트였는데요. 그게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따뜻하게 말해줘서 고마워”하는 정성적 반응도 많았고, 클릭률이나 참여율도 굉장히 높았어요. 저는 그때 CTR이 뭔지도 몰랐던 상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수치가 나온 게 정말 대단한 일이었죠.
더 좋았던 건 팀원 분들 반응이었어요.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할지 몰랐네?”이런 얘기들을 해주셨었거든요.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토스 팀에 재미나 감동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게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때 추석 토끼를 같이 제작하는 팀원 분들 조차도 공감을 잘 못하셨는데, 제가 딱 한번만 만들어보자고 겨우 부탁해서 만들었거든요. 다행히 잘된 거죠. 이 때 이후로 주기적으로 기부 이벤트 같은 시즈널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정성적 가치 전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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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즈널 말고 다른 제품도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시즈널 제품을 몇 번 성공시키다보니, 단기 제품이 아닌 장기로 운영되는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에 제가 개인적으로 사주를 좀 공부했었는데요, 기왕이면 내가 관심 있는 걸 파보자라는 생각으로 ‘오늘의 운세’라는 제품을 만들었어요. 저 혼자서 기획서도 쓰고, 같이 할 팀원 분들을 모았죠. 300개가 넘는 운세 콘텐츠를 하나하나 제가 직접 써 가면서요.
그런데 상시로 운영되는 제품을 만드는게 진짜 어렵더라고요. 제일 어려웠던 건, 제품 운영 자체보다도 팀원들의 동기가 떨어져 가는 걸 볼 때였죠. 그럴 때 진짜 제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운영 모드로 돌리고 사실상 운세 제품을 접게 됐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 실패 여부를 따지자면 실패긴하지만,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가장 많이 높일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어요.
한편으론 토스에 감사하기도 하고요. 그때 제가 이 제품 만들겠다고 좀 막무가내로 나갔는데 막지도 않았고, 목표달성을 못했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았거든요. ‘이곳에선 정말 해보고 싶은걸 자유롭게 할 수 있구나’라는걸 새삼 느꼈어요. 이 과정에서 배운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얼마나 뜻 깊은지 많이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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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집중하고 계신 접근성은 어쩌다 시작하게 되셨어요?
이런 것들을 다 해보고 나니까, 점점 일의 재미보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스스로가 재미 드리븐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경험을 거치면서 재미만으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여기서부터 제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할수록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며 제작했던 했던 시즈널 이벤트더라고요. 접근성이요.
사실 그때 저도 처음 접근성 UX를 접하게 됐는데요, 그때 이후로 계속 접근성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근데 당시에는 팀원들이 접근성 이슈에 큰 관심이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러다보니 저 스스로도 ‘회사는 당장 매출이 중요한데 내가 너무 먼 세상 얘기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지영님이 UX 플랫폼 트라이브 헤드로 오시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지영님은 팀원이 어떤 관심사가 있으면 ‘더 파봐, 지지해줄게’하고 적극적으로 표현도 해주시는 타입이잖아요. 덕분에 저도 용기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접근성 관련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죠.
Q. 마지막으로, 5년 전 나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요?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저는 늘 많이 방황해왔던 것 같은데, 이제야 계속 나아갈 방향성을 좀 잡은 것 같거든요. 일뿐만 아니라 삶 전반으로요. 그런데 그런 방향성은 어디서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많이 고민하고 시도해보면서 ‘이거구나!’라는 느낌이 들 때 생기는 것이 더라고요. 이제는 옛날만큼 불안하지 않고, 챌린지가 들어와도 방향성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무너지지 않아요. 어차피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까 내가 생각한대로, 해왔던대로 나아가면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어서인가 봐요.
Interviewee: 김유라 Interviewer & Editor: 김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