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그래픽 디자이너가 했던 가장 비효율적인 일
토스 그래픽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나요?
토스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토스 제품의 시각 경험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에요.
제품에 사용되는 아이콘, 3D, 애니메이션 등의 디지털 그래픽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합니다. 화면 맥락에 맞는 좋은 그래픽을 통해 사용자가 제품을 쉽고 재밌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요.
그래픽 디자이너의 업무 범위는 어떻게 정하게 됐나요?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으니 전부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어요.
그래픽 디자이너는 토스에서는 첫 직군이긴 하지만, 타사에서는 이미 그 역할이 잘 알려져 있어요. 주로 아이콘이나 일러스트같은, 제품에서 UI와 텍스트를 제외한 시각 요소를 만드는데요.
제가 봤을 때 당시 토스는 다른 디자인 영역에 비해서 그래픽은 황무지 상태라고 생각됐어요. 왜냐면 당시 토스의 UI는 TDS라는 훌륭한 디자인 시스템이 있었고, 완성도 높은 로고와 시스템 폰트도 있었고, 컬러까지도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그래픽은 가이드라인은 커녕 자산조차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빠르게 퀄리티 높은 그래픽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료들도 공감해주었기 때문에 업무 범위가 금세 명확해졌어요.
혼자서 전체 제품 퀄리티를 챙기기 위해서 어떤 시도들을 하셨나요?
유저의 90% 이상이 볼 수밖에 없는 화면에 집중했어요.
혼자서는 토스의 모든 서비스 그래픽을 다 챙길 수 없기 때문에, 특정 부분에 집중해야 임팩트를 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랬을 때 홈, 내소비, 전체탭처럼 앱을 열자마자 보이거나 한 번의 클릭만으로 마주치는 화면을 개선하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럼 그 화면에서 어떤 그래픽을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봤더니 90% 이상이 아이콘이었어요. 이 걸 보니 아이콘 한 세트만 잘 만들어도 토스 제품 그래픽의 90% 이상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머지 3D나 애니메이션도 아이콘을 기준으로 쉽게 확대 재생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가장 먼저 토스의 전체 아이콘을 다듬었어요. 전체 아이콘의 밸런스를 균일하게 맞추고, 컬러도 TDS (토스 디자인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컬러만 사용해서 UI 디자인과 찰떡궁합이 되도록 만들었어요.
또, 당시 내소비 탭에서는 회색 아이콘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색상이 없다보니 물체를 바로 인식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모든 회색 아이콘을 컬러 아이콘으로 바꾸어 가시성을 높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모든 아이콘을 개선하고 제품에 바로 적용하다보니 한 달 뒤에는 거의 모든 아이콘이 제가 다듬은 것들로 바뀌어 있었어요.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큰 효율을 만들어 낸 사례였다고 생각해요.
3개월 동안 했던 일 중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절대불변의 법칙”처럼 그래픽 가이드라인 만든 것이요.
저는 당시 유일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토스 그래픽은 어떤 느낌이야!” 라는 것을 빠르게 정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큰 방향을 정해야 앞으로 그 방향에 맞춰서 그래픽을 그려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그래픽보다 앞서서 문서부터 만들었어요. 좋은 키워드 뽑고, 컬러팔레트 만들고, 꽤 그럴싸하게 완성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이걸 보고 따를 사람이 나 한명 뿐이네 싶은 마음 반, 언제 이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다 그리지? 하는 마음 반 들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만든 문서에 저 혼자 갇힌 적도 있어요. 예를 들면 가이드라인에서 “귀여움”을 지양하면서, 아이콘이 너무 귀여운 인상을 주지 않도록 라운드를 전부 없앴는데 너무 뾰족해서 제품에 잘 안 어울렸거든요. 근데 혼자서 ‘라운드는 너무 귀여워 보여서 가이드라인에 어긋날 텐데…’ 라는 생각에 쉽게 바꾸지 못 했죠. 기준을 만들었어도 실제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면 빠르게 수정해야 하는데, 가이드라인은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던 것 같아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가이드라인 만들기 이전에 여러 방향으로 많이 그려보고, 제품에 빨리 적용해 볼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좋고 어떻게 하면 이상하구나, 라는 러닝을 최소 10개쯤 쌓았을 때 비로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을 것 같아요. 또 만들고 나서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접근할 것 같아요.
첫 3개월 동안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제가 한 번도 안 해본 영역에서 DRI를 쟁취하는게 쉽지 않았어요.
*DRI : 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직접 책임질 수 있는 개인의 줄임말로, '직접 책임자'를 의미합니다
제가 없었을 때는 브랜드 디자이너 지윤님, 플랫폼 디자이너 수영님이 제 역할을 일부 하고 있었어요. 두 분이 토스에서 3D와 모션을 제품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몇 번의 실험으로 그 위력이 증명되기 시작한 무렵이에요. 근데 당시 저는 한 번도 3D나 모션을 제작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하지만 누가 봐도 3D나 모션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역할이기 때문에, 두 분에게서 DRI를 가져오는게 토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자리잡는 첫 걸음이구나 싶었죠.
일단은 툴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출근길에 유튜브로 공부하고, 낮에는 업무, 밤에는 3D 스터디 하면서 시간을 보냈죠. 처음에는 대체 언제 익숙해지려나, 했는데 계속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새 적응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 처음으로 아래 애니메이션을 제품에 적용했는데 그 때 정말 뿌듯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소소한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해요.
처음 입사한 당시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어처구니없는 시도와 실패를 더 많이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팀과 동료들에게 빠르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안전한 방향으로 디자인했던 것 같아요. 대다수에게 호불호가 없는 스타일의 그래픽 위주로 만들었거든요. 물론 그 때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토스 그래픽 톤을 잘 구축해왔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지금은 회사도 10배 가까이 커졌고, 그래픽 양은 1000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때 과거에 비해 리스크가 훨씬 크다고 느껴져요.
그래서 제 분야가 황무지같은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새롭고 어처구니없는 시도와 실패를 더 많이 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순탄했던 것은 별로 생각 안 나지만, 힘들고 헤맨 기억은 쌓여서 결과적으로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요.